티스토리 뷰
산행 개요
- 산행일 : 2022.12.23
- 구간 : 죽령주차장~여의곡주차장
- 거리 : 16.3km
- 소요시간 : 6시간 24분
구간 시간
10:00 죽령주차장
11:40 제2 연화봉
12:27 연화봉
13:20 제1 연화봉
14:50 비로봉
16:24 어의곡주차장
산행후기
소백산 죽령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이 9시 45경이니까 주어진 시간은 17시 15분 까지다. 휑한 주차장에는 바람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바람을 버틸 수 있는 칸막이 안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칸막이 여풀때기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길샘앱을 켰지만 뭔가 미진한 듯해서 비어 있는 칸막이로 들어가서 배낭을 다시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10시 8분을 지나고 있었다. 산행준비에만 23분을 소요한 것이다. 그 사이에 일행들은 다 올라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걷기로 했다. 눈이 덮인 오르막길이라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가끔씩 천문대 소속 4륜구동차가 지나갔다. 올라가는 길에는 4륜구동차를 개조한 제설차량이 있었고, 눈을 치우는 포클레인도 있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걸어서 제2 연화봉에 도착했는데 앞서간 사라들이 보이지 않았다. 제2 연화봉 인근부터는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 위에 서리가 맺히고 그 위에 또 눈이 쌓인 하얀 꽃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제2 연화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앞서 올라간 산객들이 몇몇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추월할 시간이다.
연화봉에 올라섰다. 바람이 불어서 매우 추웠다. 손이 시려서 사진 찍기가 겁이 났다. 사진기 창은 얼어서 보이지 않는다. 대충 앞만 보고 셔트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과 카메라로 사진 한 장씩만 찍고 얼른 비로봉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눈이 많이 쌓여서 걷기 힘들었다. 냅다 달렸다. 다행히 미끄러지지 않고 잘 내려갔다. 나무들이 조금만 뜸해도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코가 다 어는 것 같았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릴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안경에 성애가 낄 것 같아서 말았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조금 평평해지더니 제1 연화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 눈은 허벅지를 넘게 쌓인 곳도 있었다. 오름길이 정체가 되어서 웬일인지 궁금했는데, 앞선 여성분이 헤매고 있었다. 바람이 차단되지 않는 레깅스 바지를 입고 있었다. 허 참. 남성 일행분이 있어서 잘 안내하겠지 하면서 지나쳤지만 내심 찜찜했다. 저런 상태로 소백산 칼바람을 뚫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는지. 하산해서 산행대장의 안내로 알았는데, 여성분은 119에 구조되어 실려갔고 남성 두 분이 하산 에스코트를 했다고 했다. 준비가 안된 산객 때문에 산행을 포기한 남성분은 무슨 죄인가.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산은 만만히 봐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스럽게 다시 깨우쳤다.
제1연화봉은 바람이 불지 않아서 좀 쉬면서 간식을 먹고 갈까 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에 그곳에서 간식을 먹지 않은 것을 매우 후회하게 될 줄이야. 제1 연화봉을 지나고 나면서부터는 바람이 점점 더 세 지고 있었다. 천동갈림길이 있는 곳에는 찬바람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오른쪽 영주 쪽으로 몸이 날려 가려고 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걸었다. 춥고 배고팠다. 남이 시켜서 이랬으면 매우 서러울 뻔했다. 바람이 좀 잦은 큰 바위 아래에서 간식을 먹었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곶감은 따로 꺼내서 주머니에 넣고 가면서 먹기로 했지만 어의곡 삼거리를 지날 때까지 한입도 못 먹었다. 주목관리소는 가도 가도 나오지 않았다. 제1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가 이렇게나 멀었나? 주목관리소를 지나서 비로봉 올라가는 길에서 자꾸만 날려가려는 몸뚱이를 데크난간이 막아줬다. 비로봉에 올라섰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소백산 칼바람은 많이 맞아봤지만 오늘은 차원이 달랐다. 삼가에서 올라온 산객이 비로봉 정상석을 찍으려고 폼을 잡다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도 했다. 비로봉 표지석은 바람에 뱅뱅 돌아서 완전히 다른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비로봉 방향을 삼가 쪽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어의곡삼거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의 바람은 더 세졌다. 기상청 일기예보상으로는 체감온도가 영하 31도라고 했는데. 그 이상으로 보였다. 얼굴을 뾰족한 바늘이 찌르는 듯했다. 오늘 국망봉까지 간 산객은 없어 보였다. 이 바람에 죽으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는 그럴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의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천국의 길이었다. 바람이 잦아들어서 껴입고 싸맨 옷들과 목도리, 모자를 벗었다. 기온은 아직도 낮았지만 이미 칼바람에 지치고 난 상태라서 하산길은 어려움이 없었다. 남은 시간이 어중간했다. 지금 상태로 내려가면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는 일찍을 것 같았다. 가게에서 영업을 하면 라면에 소주 한 잔을 할 수 있을 테지만, 영업을 하지 않으면 버스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의곡 가게에 들러서 영업을 하느냐고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영업은 당연히 안 한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정리한 후 산에서 못 먹고 지고 내려온 음식과 비상용 술을 꺼내서 홀로 하산주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래도 출발시간이 많이 남았다. 정확하게 17시 15분에 출발한 버스는 죽령으로 다시 갔다. 탈진으로 119에 실려간 산객을 에스코트한 분을 태우려고. 버스 안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참 힘들었던 하루였다.
<산길샘 기록>
'산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칠봉(居七峰)은 거칠었다 (0) | 2023.01.05 |
---|---|
발왕산, 추억의 길을 걷다 (0) | 2022.12.28 |
북한산에서 하루 보내기 (0) | 2022.11.18 |
대암산과 용늪을 구경하고 오다 (0) | 2022.10.21 |
은비령길(인제천리길 10구간) (0) | 2022.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