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산행 이야기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

정바우 2023. 5. 27. 17:05

 

영원사

 

 

 

 

산행 개요

 

- 산행일 : 2023.5.27

- 산행구간 : 음정마을~칠암자~백일휴게소

- 거리 : 16.4km

- 소요시간 : 9시간 00분

 

 

구간 시간

 

03:43   음정마을

05:50   도솔암   

07:02   영원사  

08:01   빗기재

08:35   상무주암 갈림길

08:49   삼정산

09:05   상무주암 갈림길

09:11   상무주암

09:47   문수암

10:21   삼불사

11:47   약수암

12:25   실상사

12:43   백일휴게소

 

 

 

산행 후기

 

백두대간벽소령 빗돌이 있는 음정마을 주차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차가 밀려서 버스에서 내렸다. 이마에 불 밝힌 사람들이 워낙 많고 가로등 불빛도 있고 해서 헤드랜턴은 꺼내지 않고 손전등을 꺼냈다. 작전도로를 벗어나서 산길로 이어지는 곳에서 심한 정체가 일어났다. 작전도로를 따라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산길로 올라가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꼬리를 무는 산객(순례객)들이 밝힌 마빡불로 인해서 등산로는 장관을 연출했다. 가다가 서다가 하다가 보니 다시 작전도로와 만났다. 작전도로에 도착해서도 줄 서서 걷는 길은 여전했다. 날이 밝아오려는지 산새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홀딱 벗어! 홀딱 벗어! 홀딱벗어새가 울고 있는데... 어떤 여성산객이 하는 말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 부끄러워서 못 벗겠다고 전해라!"  하더라. 혼자서 슬그머니 웃었는데 어둠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더라. 작전도로를 따라서 한참을 걸은 후에야 도솔암 올라가는 산길이 나왔다. 벽소령 올라가는 길은 좁은 산길이라서 심하게 정체되었다. 도솔암 올라가는 길은 처음부터 매우 가팔랐다. 가파른 오름길이라서 앞사람이 걷는 속도에 따라서 가다가 서다가 했다. 다섯 시쯤이 되었을 즈음부터는 온갖 산새들이 울기 시작했다. 날은 이미 밝아온 듯했지만 깊은 숲 속이라서 어둠은 빨리 물러가지 않았다. 다섯 시 반을 넘기고 나서야 랜턴을 끌 수가 있었다. 도솔암은 함부로 자신을 내주지 않았다. 또 어떤 여성산객이 힘들어서 하는 말 "절을 누가 멀리 갔다 놓았나?"  그러게 말이다.

 

음정마을 주차장에는 산객들로 바글거렸다.

 

산길을 걷다가 작전도로를 다시 만나서 조금 더 걸어갔더니 벽소령 탐방로라 적혀 있는 통제선이 작전도로길을 막고 있었다.

 

 

음정마을에서 두 시간쯤을 걸은 후에야 도솔암에 도착했다. 일 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만 문을 연다고 했는데 도솔암 가는 길은 잘 나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도솔암은 높은 곳에 있는 암자라서 그런지 조그만 절집이었다. 우선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정한 가람이었다. 그런데, 연등에 이름표를 달려고 물어봤더니 3만 원이라고 했다. 내가 가진 현금이 부족해서(앞으로 가야 할 남은 6 암자에 시주를 해야 해서리) 포기하고 나니 찝찝한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 송이 연등을 마음속에 달기로 하고 도솔암을 떠났다.

 

 

도솔암에서 영원사 가는 길은 심한 너덜길이었다. 발바닥과 무릎이 아플 정도의 내리막길을 걷는데, 아직도 원기양성한 아주머니들의 인생잡사 이야기를 듣기가 힘들어서 그 팀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났더니, 뒤따르는 다른 팀의 남자는 왜 또 그렇게 목소리가 큰지 다시 길을 비켜주고 뒤따라서 걸었다. 이런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는 내가 잘 못된 것이리라. 그렇게 걷고 걸어서 영원사에 도착했다. 안내판을 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산길이 비법정 산길인 모양이었다. 곰과 만날 위험이 있으니 빨리 나가라는 안내방송이 조그만 송신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산길을 벗어나면서 만나는 영원사 가는 길은 양정마을에서 부터 찻길로 개통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靈源寺는 높다란 축대 위에 있었다. 가파른 길을 씩씩거리면서 올라가서 절마당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가 무릉도원일쎄.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나오니 절밥을 배식하고 있었다. 고승대덕이 많이 머물렀던 절이라서 인심 또한 좋았다. 한 보살님은 빨리 절밥을 배식하라고 동동거리며 일하는 분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배낭에는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이 있었지만 굳이 절밥으로 아침공양을 하고 싶어서 줄을 섰다. 간단한 나물에 밥 한 덩이와 작은 그릇에 담긴 나물된장국을 받았다. 비를 피할만한 처마자락 한 끝에 자리를 잡고 맛나게 공양을 했다. 꿀맛이었다. 조금 전에 부처님 뵙고 한 시주가 너무 적었으려나?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릇을 씻으려고 가는데  pty 대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잠실에서 출발하는 산객들을 인솔해서 온 모양이었다. 아침공양 후 가는 비를 맞으면서 영원사를 떠났다.

 

영원사

 

영원사 일주문 대신에 서있는 커다란 빗돌앞에는 아직도 인증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영원사는 천년고찰이었지만 지금은 소박한 절로 세월을 이기고 있었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순례객들

 

무량수전 앞뜰에는 하얀부처님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계시더라.

 

영원사에서 받은 아침공양

 

영원사 화장실 뒤로 상무주암으로 가는 산길이 열려 있었다. 지금부터 1200고지를 올라가야 한다.

 

 

영원사를 떠나서 상무주암으로 길을 나섰다. 절 왼편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걷는데 오름길이 계속되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걸었다. 빗기재 바로 아래에서 pty대장님을 다시 만났다. 빗기재로 올라서니 여러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빗기재를 지나고 나서도 오름길은 계속되었다. 길섶에 있는 산죽이 떼거지로 죽어 있었다. 대나무는 꽃이 피고 나면은 후손을 남기고 죽는다는데 이렇게 떼거지로 죽으면 후손이나 제대로 남길 수나 있을는지.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고 지나갔다. 산길은 계속 오름짓을 하더니 삼정상 올라가는 능선길로 짐작되는 곳에서부터는 산 여풀때기로 지나가고 있었다. 긴가민가하여 램블러를 켜보니 조금 더 가야 삼정산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고 했다. 한참을 여풀때기 길을 가다가 보니 출입통제 밧줄이 나왔다. 그런데 출입통제 팻말 바로 옆에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팻말이 매달려 있었다. 가도 된다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느껴서 과감하게 밧줄을 넘어섰다. 밧줄을 넘어가니 길은 잘 나있었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잠깐 올라섰더니 헬기장이 나왔고 몇몇 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헬기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조망터가 나왔는데 선점한 산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그냥 지나갔다. 삼정산 정상은 금방 나왔다. 정상 주변은 빽빽한 나무들로 인해서 조망이 없었다. 뒤따라온 젊은 산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줬더니 내 사진도 찍어준다고 했다. 잠깐 망설이고 있는데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뱃살이 덜 표시되도록 조심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오늘 산행길의 대장인 삼정산에서 인증을 남겼다.  

 

빗기재를 지나 상무주암으로 가는 길의 산죽이 이렇게 단체로 죽어가고 있었다.

 

삼정산 올라가는 길에 잠깐 하계를 내려다보니 운무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게요. 아니온듯 삼정산을 댜녀오겠습니다.

 

오늘 걷는 길에서 대장노릇을 하는 삼정산에서 인증사진을 남겼다.

 

 

 

 

삼정산을 올라갔다가 출입통제 팻말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왔다. 기걸찬 소나무 아래에서 초콜릿과 물 한 모금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상무주암의 오래된 집과 화장실을 지나서 돌아나가니 상무주암이 나왔다. 상무주암 화장실 냄새가 산 가득히 퍼져 나갔다. 절집이라도 속세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음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절집의 당호는 上無住였다. 머무름이 없다는 뜻인데..  절을 지키고 있는 처사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담밖에서 한 컷을 찍을 수밖에. 공양간 옆풀때기로 들어가니 지키고 있던 처사가 이리로 들어가서 예불하면 된다고 했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왔다. 떡 몇 조각과 커피를 받아서 공양을 하고 하계를 내려다봤다. 공양물은 정갈했고, 주인이나 객은 다들 평온했다. 벌써 다들 나한과를 얻은 건가? 구름과 안개가 끼어서 눈으로는 산천경계는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천왕봉과 중봉 하봉 아래 속세까지 다 보았다. 

 

상무주암에서 처음 만난 절집은 어릴 때 살던 옛 시골집을 연상하게 했다.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천왕봉 방향

 

 

이 높은 곳애서 절집 살림을 도우는 텃밭

 

 

절마당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절 밖에서 한 컷

 

 

이렇답니다.

 

문수암 들어가기전에 있는 전망대

 

천왕봉 방향 경치는 이래요.

 

문수암 시작은 금낭화와 함께

 

상무주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문수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지리산 특유의 너덜길은 생략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아가니 문수암이 있는지 순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역시나 가난한 절집의 도우미로 비탈진 밭이 먼저 나타났다. 절집 올라가는 짤막한 계단을 올라가니 커다란 동굴이 나왔고 약수가 흘렀다. 절집은 바위굴 오른쪽에 있었는데 법당이 너무 좁아서 밖에서 삼배를 올리고 나왔다. 문수암에서 보는 경치는 천하제일이다. 구름 때문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만큼이 나에게 주어진 복락인 것을. 다시 동굴로 가서 약수 한 잔을 하고 길을 나섰다.

 

 

문수암 가기 직전의 가파른 비알에 조성한 텃밭

 

해우소가 있는 곳이 문수암 최고의 명당자리였다.

 

 

동굴의 모습인데, 사람들이 있어서 전체 사진은 못 찍었다.

 

문수암에서는 법당안이 좁아서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삼배를 올렸다.

 

경치가 이렇게나 좋아요.

 

삼불사로 가야지요.

 

문수암에서 삼불사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어렵게 삼불사에 도착했다. 많지 않은 건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원래는 비구니승이 계시던 곳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비구승이 주석하고 있는 듯했다.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나오니 스님께서 둥글래 차를 보시하고 계셨다. 역시나 작은 절 인심은 후하구나. 몇 개 남지 않은 쑥떡 한 조각을 들고 스님께 차 한 잔을 받아서 하계를 내려다보니 세상은 웅장하구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칠암자 순례길 다섯 번째 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삼불사의 당호는 삼불주였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불이 머무시는 곳.  나는 오늘 칠암자 순례길에서 가장 아늑한 절집에다 인연을 지어 두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삼불사에서 처음 만난 인연은 작은 집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이 머무르는 곳

 

 

비록 하계는 흐릿하게 보였지만, 절집에서 보는 풍경이라서 그런지 하계도 이상향으로 보였다.

 

삼불사를 떠나는데 수국이 인사를 한다. 지나가는 산객도 뒤돌아 볼 수 밖에...

 

 

내 마음에 꽉 찬 절간인 삼불사를 떠났다. 여건이 허락되면 절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고 싶었지만 그건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것이라 마음에 담아 두기만 하련다. 삼불사에서 약수암 가는 길은  짧은 산허리 너덜길 여풀때기를 걷다가 능선을 만나서 주구장창 내려가는 길이었다. 능선길을 한참을 내려가다가 보니 산길 왼쪽에 약수암이 보였다. 약수암으로 바로 가는 길은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있었다. 역시나 하계가 가까워지니 암자 인심도 사나워졌구나.  약수암에 도착했다. 산객인지 순례객인지 많은 사람들이 전각들 사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전 암자에서 보았던 스님과 보살 처사 신도들의 어울림이 전혀 없는 절집이었다. 속세가 가까워서 인가? 

 

절은 큰데 하도 황량해서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을 촬영해보았다.

 

 

보광전

 

단체 순례객이 빠져나간 뒤의 약수암 모습

 

실상사 가는 길은 차도로 잘 닦여 있었다.

 

 

약수암에서 헛한 마음을 추스르고 잘 닦여있는 차도를 따라서 실상사로 내려갔다. 약수암에서 실상사로 내려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산길을 다 내려오니 왼쪽으로 실상사가 보였다. 논 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가니 사천왕이 모셔진 문이 나왔다. 사천왕께 인사를 드리고 문을 들어서니 널찍한 절집 마당이 나왔다. 법요식이 끝났는지 처사들이 의자를 치우고 있었다. 실상사에 주재하시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오니 행사를 마친 불자들이 점심공양을 위해 길게 줄을 서있었다. 여기저기 절마당을 기웃거리다가 목조탑 유허지에도 가보았다. 솟대도 있었고, 세월호 기림 조형물도 있었다. 이렇게 큰절도 세속을 등지기는 힘들었겠지. 보광전. 이번 칠암자 순례길에 대웅전이라는 당호는 못 봤다. 대신에 보광전이라는 당호를 보았다.

 

실상사

 

실상사 돌솟대

 

칠암자 순례길을 마치고 백일리에 도착했더니 주어진 시간보다 한참이나 일렀다. 휴게소 가게에 들러서 막걸리 한 병을 4천 원 주고 산 뒤 종이컵 두 개를 얻었다. 건너온 다리를 다시 건너가서 개울로 내려갔다. 개울에서 다시 만난 pty대장님이 주시는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물에 들어가서 대충 땀을 씻었다. 내가 땀을 씻는 사이에 pty대장님은 자리를 뜬 모양이었다. 도시락을 꺼내서 막걸리 반주로 점심을 먹었다. 한참을 개울에서 노닐다가 백일휴게소 주차장에 가보니 버스는 에어컨을 틀고 산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출발할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다시 휴게소로 가서 캔맥주 한 캔을 사서 시간을 때웠다.

 

 

 

 

'산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갑산  (0) 2023.06.16
설악산 마등령 넘어서 오세암 가는 길  (0) 2023.06.04
지리산(백무동~중산리)  (1) 2023.05.14
사명산 등로에는 노란색 물감이 뿌려져 있었다  (0) 2023.04.28
진안 마이산  (0) 2023.04.2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